
옷을 좋아하든 옷에 관심이 없든 이미 남성패션 속에는 2차세계 대전의 미군복이 큰 영향을 주었고 이것은 당신이 알고있든 모르고 있든 존재하는 사실이다.
나는 다른 이들에게 “옷을 좋아하면서 어떻게 밀리터리를 모를 수 있어? 라고 하지는 않는다. 다만 알고 입음에 즐거움을 줄 수 있고, 내가 오늘 입을 옷을 고를 때 생각해볼 “어울리는 옷” 이라는 기준에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 생각한다.

1차세계 대전과 다르게 2차세계 대전은 이데올로기가 대대적으로 격돌한 전쟁이었다. 그렇다 지금까지도 입에 오르는 “민주주의” 와 “사회주의” 의 충돌이었다. 그리고 그 승기는 “민주주의”의 대표주자 미국이 쥐게 되었고 미국의 청년들이 새로운 멋의 기준이 되었다.
1차세계 대전 이전까지는 “기사도” 라는 곱상한 전쟁 문화가 있었는데, 예컨데 각자의 희생을 최소화 하기 위해서 작은 격투에 대열이 무너져도 항복하는 등등의 야만을 덮어둔 시절이었다. 거기다 봉건적 국가체제 시절에는 1명의 군인을 키우는 비용이 매우 비쌌기 때문에, 항복한 군인은 상대국군에 병합되는 등등 지금보면 꽤나 재미있는 “병정놀이”에 가까웠다.

그리고 총기를 들고 싸우게 되는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이런 기사도의 엘리트 군인들은 순식간에 몰살 당한다. 이를 충당하기 위해 아무것도 모르는 시골 청년들을 현대식 교육으로 짧은 기간에 군인으로 만들어 전쟁터로 보냈다. 그들은 폭탄이 터지면 수천구의 시체들이 떠오르고, 피가 땅을 적셔 썪는 진탕에 굴러야했다. 이런 야만적이고 고어한 경험을 수년동안 지속된 것이 1차 세계대전이었다.
이 전쟁은 유럽의 모든 청년들의 사상에 깊은 영향을 주었는데, 야만이 모습을 보일때 논리와 이상, 전통, 사랑은 어떤것도 해줄 수 없다는 것이다. 기사도의 환상은 무녀졌고 종교는 위상이 흔들렸다. 거기다 참전당시 보급된 여러 마약 약물들과 전쟁으로 인한 PTSD 로 혼돈 그자체에 있던 참전 군인들에게 국가는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다. (1차 세계대전 참전 군인과 그당시 사회상은 영국 드라마, “Peaky Blinders” 에서도 묘사된 바 있다.)
“가진것들은 우리를 챙기지 않는다.” 것을 친구, 부모, 사촌의 죽음으로 배우게 된 어린 청소년, 청년들은 변화를 모색했다. 이를 반영하듯 국가운영 체제로서 대중적으로 제안된 것이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였던 것이다. 러시아에서는 군주제를 몰아내는 혁명까지 일어났다.
나치즘, 민주주의, 사회주의가 격돌하게된 2차 세계 대전에서 승전기를 꽂은 미국군은 새로운 시민을 위한 정치 혁명을 구현하고 수호한 인물상이었던 것이다.
일상으로 돌아간 청년들은 이 군복들을 입으며 “스트릿 웨어” 속에 스며들었다. 그리고 이런 참전군인들의 모습은 어린 아이들에게 동경의 대상이었고 그 군복은 따라입고 싶은 옷이었다. (당시 미국인들이 특히 미국군에 환호했던 바탕에는 미국 특유의 개척 문화도 있다. 법이 먼 곳에서는 폭력과 약탈이 만연한데, 이를 잠재워줄 선의의 무력을 가장 마지막 까지 경험한 선진국이 미국이었기 때문이다. )

다양한 분야의 직종과 예술에서도 미군복은 자주 등장하게 되면서 “군인이었으면서 ~인 사람” 의 패션이 정형화되었고 이는 지금의 패션 스타일 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락 과 같은 음악 장르에서는 “남성성” 을 표현하기 위해 미군복을 입거나 이를 커스텀하면서 다방면으로 현대인들의 머리속에 각인되었다.
이전까지는 항상 패션은 부유한 이들을 의복만을 다루었었지만, 2차세계 대전 이후 최초로 없는 이들 평범한 이들을 쫓는 군인의 옷들이 패션으로서 떠오르게 된것이다. 이탈리아의 양복 만이 명품이던 시절의 패션에서 대중혁명을 해낸것이다.

패션은 옷의 생김새와 색감이고, 이것이 모이면 스타일이 되고, 그 스타일이 모이면 페르소나가 된다. 지금의 나를 상징할 수 있는 옷, 혹은 내가 되고싶은 인물상을 보여주는 옷을 입는 것 만큼, 즐겁게 옷을 입을 방법이 더 있을까? 나의 모습에 남성성이 있다면 밀리터리는 그것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옷들 중 하나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