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품질을! 1985 조던1 시카고

아직도 생생하다. 아직 학생이었던 당시의 나에게 조던1 시카고는 사기 어려운 신발이었다. 마지막 발매가 94년이었고 한국에 매물도 적었으며 리셀가도 붙어있는 상태였다. 2013년 슈겜코, 나이키매니아 같은 당시의 신발 커뮤니티에 조던1 시카고가 발매한다는 소식을 봤을 때 엄청 두근거렸다. 홍대 나이키 조던 매장, 상수 스니커즈 매장을 기억하는가?

드라마, ‘마지막 승부’ / 만화 ‘슬램덩크’

서태지와 아이들, 원타임으로 대표되는 90년대 부터 00년대 한국에서는 최초로 세대의 큰 집단이 힙스터였던 X세대가 문화를 이끌고 있었다. 일본에서는 하라주쿠 패션이 주목받던 시절이었다. 만화로는 슬램덩크, 드라마로는 마지막 승부가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그 힙스터 중에는 외형 뿐만이 아니라 나도 그들의 지식, 성향, 일상을 닮고싶다는 욕구를 느낀 사람들은 여러 본토의 문화 매체들을 소비하기 시작했다. 이때 NBA와 농구화 수집문화도 한국에 함께 들어왔다. 이 문화는 00년생인 나에게 까지 이어져 내려왔다.

강백호는 데니스 로드맨을 서태웅은 마이클 조던을 모티브로 했다는 비하인드와 함께 북산고는 시카고 불스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90년대 당시에 일본은 이미 스니커 수집 문화가 꽤 활발했던 모양. 만화속에서도 스니커광 신발가게 아저씨가 등장한다. 한국 남학생들은 슬램덩크에 등장하는 조던 1 , 조던 5, 조던 6 을 보며 꿈을 키웠다.

HISTORY.

현대에서 나이키 조던 1은 스트릿 문화를 상징하는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이것이 곧 케주얼 웨어에도 영향을 주면서 남녀를 불문하고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80년대 특유의 심플하면서도 동시에 개성있는 나이키의 디자인이 이제는 스니커즈의 스탠다드가 되었다.

1984년 당대 슈퍼스타 루키 마이클 조던과의 계약을 맺은 나이키는 다른 기업들과 달리 파격적인 행보를 기획하고 있었다. 신발의 51%가 흰색이어야 했던 당시 NBA의 룰을 어기고 벌금을 나이키가 부담하면서 까지, 마이클 조던과 시카고 불스를 코트 위 에서 가장 멋있게 만들어주었다. 마이클 조던의 명성에 붙는 자극적인 이 뉴스는 마케팅 효과를 이뤄냈고 나이키는 엄청난 바이럴을 타기 시작했다. 나이키는 이렇게 스포츠 스타가 신어서 상징화된 신발은 재발매를 정말 잘 안해줬다. 이것이 한정판 신발 수집의 문화를 만들었다. 이런 나이키의 야망 속에 한국 기업이 있었다.

한국 제조업 신화

70년대 나이키는 OEM 방식을 이용해 신발을 생산했었다. 브랜드는 제품을 직접 생산하는게 소비자들에게 익숙하던 시절이었음에도 공격적인 선택이었다. 하지만 나이키 창업자 필 나이트는 오니츠카 타이거 신발을 떼다가 미국에 팔며 일을 시작했던 경력 덕에 그에겐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나이키는 OEM 생산으로 새로운 디자인과 마케팅에 전념할 수 있었다. 일부 신문에서는 신발을 제작하지 않는 신발 브랜드로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필 나이트의 삼화고무 방문 / 80년대 삼화고무 공장 내부

일본 고베시에서 신발을 생산하던 나이키는 70년대 중반부터 인건비 상승으로 인해 더 저렴하게 물건을 제공해줄 대체 국가를 찾고 있었다. 그렇게 필 나이트는 1974년 부산의 삼화고무와 첫 OEM 거래 (3,000 켤레) 를 맺었다.

85년 한국산 조던 1의 중창을 뜯으면 보이는 ‘최고의 품질을!’ 문구.

1970년대~1980년대는 대구, 부산의 소비재 제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때이다. 1960년대 부터 부산은 이미 구두와 부츠를 생산하는 고급 기술을 지니고 있었다. 1962년 태화고무가 장화 12만 8,000 켤레를 한국신발 최초로 수출하면서, 한국의 신발 제조업은 1960~80년대 한국을 먹여살렸다. 부산 서면 기술자들의 명맥을 이어 받은곳이 염천교와 성수동 이다.

동양고무 간판 / 동양고무 지면광고

1984년 나이키의 협력사로 국제상사 (프로스펙스의 전신), 동양고무 (르까프의 전신), 삼화고무 (타이거의 전신), 태화고무, 등 이 선택받았는데 고무 기업이 왜 운동화를 생산했을까?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태화고무 공장 내부 / 태화고무 지면광고

한국은 80년대 까지만 해도 동네 어르신분들이 고무신을 애용하던 시절이었다. (만화 ‘검정고무신’ 이 90년대 만화임을 생각해보자) 일본의 기업, 공장들의 외주로 기술력이 상당했던건 덤. 그리고 국내브랜드의 운동화도 활발히 개발되던 때였다. 러닝 선수출신이였던 필 나이트는 기존의 운동화들의 성능이 별로 좋지않고, 더 우월한 기능을 구현하고자 하는 욕심이 있던 사람이였다. 나이키의 시선에서는 새롭게 시도하려는 밑창의 에어 기술을 생산하려면 고무와 운동화를 잘 다루는 곳이여야 했고, 인건비는 저렴했어야 했으니 한국 기업이 눈에 들어올 수 밖에 없었다.

1985년 03월 05일 생산 분을 시작으로 시카고 컬러가 4월에 출시되면서, 시카고 컬러는 큰 인기를 얻었다. 시카고 개체의 대부분은 한국산이였다. 그 덕에 한국은 전세계 신발 수출 1위를 기록했다.

레드택 (한국산) / 화이트택 (대만산)

스케이터들의 선택

THRASHER 1987년 발간호

발매가 $65. 당대 가장 고가의 농구화였고 시중 농구화 2배의 가격이었다. 거기다가 마이클 조던 1의 인기를 믿고 많은 물량을 생산한 턱에 재고를 소화하지 못하고 있었다. 20달러 까지 폭락한 가격으로 유통되던 그때, 10대 청소년들의 스타였던 랜스 마운틴 Lance Mountain , 브라이스 카나이츠 Bryce Kanights 같은 유명 스케이터들이 1980년대 중후반에 신기 시작하며 인기를 얻었다.

스케이터들의 사랑은 어찌보면 매우 자연스럽다. 컨버스나 반스를 자주 신던 스케이터 씬에서도 유별나게 더 위험한 트릭을 선보이는 사람이 있었고, 그들에겐 조던만큼 발목을 안정적으로 잡아주는 신발은 없었다.

당대에는 스케이트 문화와 락 문화는 꽤나 겹치는 집합이였다. 스케이트 매거진인 Thrasher 에 새롭게 떠오르는 락밴드들이 소개될 정도. 단순히 백인 문화여서가 아니다. 스케이터들은 고작 보드 타는데 팔, 다리 부러뜨리고 이도 깨져가면서 타는 무식한 용기가 중요한 키워드다. 락 또한 비슷한 맥락이었다.

힙합의 사랑

1985년 11월 8일 발매된 LL Cool J의 데뷔 앨범 Radio 의 커버

조던 1 이 힙합과 만난건 1985년 LL Cool J가 처음이었다. 당시에 소위 깔끔한 깔롱쟁이에 잘생긴 미모로 유명했던 Cool J 의 데뷔앨범 Radio 의 뒷면 앨범커버에 등장한다. 다만 당시의 힙합에서는 1982년에 발매한 깔끔한 백색의 나이키 에어포스 1 의 강력한 인기에 밀려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칸예 웨스트가 포문을 열면서 2010년대 힙합 씬에서 조던 1 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ASAP 크루와 AWGE 레이블 소속의 래퍼, 아티스트, 모델들의 대부분은 뉴욕 기반이었고 그들은 흑인이여도 스케이터 문화와 긴밀하다는 것이 특징이었다. 그 덕에 Fuct, Supreme, Stussy, Dickies, Vans, ASSC, 등의 브랜드들이 하입을 받았고 스트라이프 상의에 연청, 조던을 신고 BMX, 스케이트를 타며 도시를 활보했다.

Hypebeast, StockX, GOAT, Grailed, Depop 같은 스니커 헤드들의 선택을 받은 신생 매거진과 중고거래 플랫폼이 성공하면서 전당포, 레딧, 경매 거래에만 의존하던 한정판 신발을 주식처럼 거래하기 시작했다. 신발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가장 역사와 오리지널리티, 아이코닉함이 돋보이는 조던 1 은 엄청난 상한가를 기록했다.

– 1985.

필자가 보유중인 1985 조던 1 레드택 (한국 동양고무 공장) / 밑창 보강된 상태

발매가 $65. 한국 제조 (SKY JORDAN은 타이완 생산)

1994년, 2013년, 2015년 모델과 달리 풀 그레인 레더를 사용했다. 그 두께도 30% 이상 두껍다. (1985년 조던1 가죽의 두께는 1.8~2.2mm 이다. 현재 조던1 가죽의 두께는 1.4~1.6mm 이다.) 스우시는 구두처럼 광이 나면서, 나머지 부분은 컬러염색이 까지면서 보이는 빈티지함에 1985년 만의 매력이 있다.

관리가 잘된 가죽에 나타난 파티나 광

가죽 관리가 잘된 개체는 파티나 Patina 광이 보이기도 한다. 다만 당시 가죽 염색 기법의 한계로 까지는 개체가 압도적으로 많다. 관리 잘된 개체는 엄청난 프리미엄을 지불해야할 것 이다.

연식 덕에 중창이 노랑색-아이보리 색으로 변색되어 있다. 필자는 오히려 변색된 것이 이쁘다고 생각한다. 당시의 중창에는 에어 기술이 들어가긴 했지만 현대와의 차이점은 7cc의 공기 밖에 주입하지 못했다는 것 이다. 현대의 조던 1에는 12cc의 공기가 주입되고, 1985년 모델은 이에 비해 충격 흡수율이 40% 낮다. 세월이 지나며 경화까지 되면서 지금의 조던1 보다는 컨버스에 훨씬 가까운 착화감이다. 현재 조던 1 은 3,000회 굽힘 테스트를 거치지만, 1985년에는 10,000회 굽힌 테스트를 거쳐 만들어져 나이키 신발스럽지 않게 내구도가 좋다. 1985년 조던 1은 가수 분해의 위험이 훨씬 적다.

내부에는 생산코드가 입력되어 있는데 예를 들어 ‘850911 TY1’ 은 1985년 09월 11일 동양고무 공장에서 판매용으로 제작된 제품이라는 뜻이다. 희소한 코드도 있다. ‘850204 TYPS’ 같은 경우 1985년 02월 04일에 동양고무 공장 에서 제작된 선수용 샘플이라는 뜻이다. 조던1 내부의 공장정보 알파벳으로는 TY1, TYPS, TH, BY, STP, SH 등이 있다. 다만 시카고 컬러의 경우 TY1 (동양고무), TYPS (동양고무 샘플), TH (태화고무) 에서만 제조된 것으로 확인된다. 공장 생산이라고 부르긴 하지만 당시에는 큰 규모의 공방에 가까워서 사실상 수작업이다.

현존하는 윙로고 중 가장 깊게 제작되었다. 당시 기술의 한계로 조금은 러프한 금형 스템프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중창에 에어 기술이 적용되지 않은 대만 제조의 ‘SKY JORDAN’ 윙로고 개체가 있다. 당시의 지면 광고를 보면 에어조던과 유사한 스타일이라며 청소년을 위한 저가형 모델로서 ‘SKY JORDAN’ 이소개된다.

1985 Jordan 1 Box / 1994 Jordan 1 Box

– 1994.

관리가 잘된 가죽에 나타난 파티나 광

발매가 $80. 중국 제조

앞코가 낮고 길게 뻗는 1994년 만의 실루엣이 있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살만한 매력이 있다.

1985 에 비해 얇은 가죽으로 만들어졌다. 때문에 가죽에 작은 주름이 많아서 1985년 모델과 느낌이 다르다. 가죽 염색 기법이 바뀌면서 까지는 개체가 매우 줄었다. 빈티지 함 보다는 실제 가죽을 사용하면서 나오는 광택감을 원한다면 1985 모델보다는 1994 모델이 더욱 좋을 것이다.

중창의 경도가 조금 더 낮아졌다. 덕분에 조금은 말랑해진 착화감이지만 세월이 지나 중창의 PU가 경화되었기 때문에 현재 신는 사람들에게는 1985 처럼 컨버스, 반스와 큰 차이가 없거나 그 이하의 착화감일 수 있으니 참고 하자.

혀가 얇은 편이다. 나이키 신발은 대체로 90년대 부터 혀가 두꺼워지면서 특유의 만화스러운 디자인 풍이 보인다. 신발 내부에 시리얼 넘버 프린팅이 현대적인 사이즈 택으로 대체되었다.

아시아 공장에서도 적극적으로 자동화 시스템이 구축되던 때라서 개체 차이가 매우 없는 편이다. 축 뒤틀림과 같은 불량 개체도 훨씬 적은 편.

EDI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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